AI를 쓰는 판단은 결국 사람의 눈에서 갈린다
논문 『Designing with AI at Work: Designers' Expertise and Pragmatic Decision-Making in Workplace AI Transformation』를 읽고
AI가 디자인 업무에 들어올 때 실제 책임은 도구가 아니라 결과물을 판단하고 조직 안에서 통과시키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남는다는 연구를 읽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
AI를 업무에 넣는다고 하면 자꾸 “무엇을 자동화할 수 있는가”부터 묻게 된다. 그런데 이 논문은 조금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디자이너들은 AI가 만든 산출물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 실제 제품·브랜드·팀의 기준 안에서 쓸 수 있는지 계속 판단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논문에서 더 크게 보인 단어는 자동화가 아니라 판단이었다. AI 도입의 품질은 프롬프트를 얼마나 잘 쓰는가보다, 결과물을 보고 “이건 우리 일의 맥락에 맞다/아니다”를 말할 수 있는 전문성에서 갈린다.

AI 도입은 산출물 생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 판단·조직 조율·최종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디자이너는 AI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걸러내는 사람이다
논문은 생성형 AI가 창의·지식노동 안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지만, 현장의 디자이너들이 그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협상하는지는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고 출발한다. 연구진은 23명의 디자이너 인터뷰를 통해, 디자이너들이 AI 사용 여부와 사용 방식을 스스로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디자인을 대신한다”가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AI를 선택적으로 쓰고, 미적 지식(aesthetic knowledge)으로 결과물의 품질을 판단하며, 회사의 비즈니스 가치와 공동 목표에 맞는지 다시 조정한다. AI가 초안을 빠르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것이 실제 조직의 결과물로 물질화되려면 사람의 판단과 조율이 남는다.
“디자이너들은 실무에서 AI를 사용할지,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Designers assume responsibility for determining whether and how to use AI in practice.”
이 문장이 좋았던 이유는 책임의 위치를 다시 잡아주기 때문이다. AI 도입 논의는 도구 권한, 사용률, 생산성 지표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누군가가 “이 결과물은 우리 기준에 맞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그 판단이 사라지면 AI는 속도를 내지만, 조직은 무엇을 통과시켰는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보이지 않는 노동이 AI 거버넌스가 된다
논문은 디자이너들의 이런 활동을 실용적 의사결정(pragmatic decision-making)으로 부른다. AI 산출물을 어느 단계에서 쓸지, 어떤 결과는 버릴지, 동료와 어떻게 맞출지, 비즈니스 요구와 디자인 품질을 어떻게 동시에 만족시킬지 판단하는 일이다.
이 부분은 Deciflow의 AI 업무설계에도 그대로 걸린다. 조직이 AI를 도입할 때 “프롬프트 가이드”만 만들면 부족하다. 더 필요한 것은 각 업무의 전문가가 AI 결과물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 거절할 수 있는 권한, 그리고 수정·조율의 시간을 인정하는 구조다.
AI 도구가 들어오면 사람의 일이 줄어든다기보다, 일부 일은 더 보이지 않게 된다. 초안 생성은 화면에 보이지만, 무엇을 버렸는지, 왜 수정했는지, 누구의 기준으로 최종안을 통과시켰는지는 로그에 잘 남지 않는다. 이 보이지 않는 판단을 업무 과정 안에 드러내지 않으면, AI 활용은 빠른 실험처럼 보이지만 책임은 흐려질 수 있다.
내 일에 붙여본다면
이 논문을 읽고 나면 AI 도입 체크리스트가 조금 바뀐다.
- 이 업무에서 AI 산출물을 최종 판단하는 전문가는 누구인가?
- 그 사람은 결과물을 거절하거나 다시 만들게 할 권한이 있는가?
- 품질 기준은 개인의 감각으로만 남아 있는가, 팀이 공유할 수 있는 언어로 정리되어 있는가?
- AI가 만든 초안을 조직 안에서 실제 결과물로 바꾸는 조율 시간이 일정에 반영되어 있는가?
작게 실험한다면, AI로 만든 산출물마다 “채택/수정/폐기” 이유를 한 줄씩 남겨보면 좋겠다. 사용량보다 이 기록이 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결과물은 AI가 바로 도움이 되고, 어떤 종류는 전문가의 재작업을 많이 부르는지 보이기 때문이다.
조심해서 읽을 점
이 연구는 디자인 업무와 인터뷰 맥락에서 나온 관찰이다. 모든 직무에 그대로 일반화하기보다는, 지식노동에서 AI 산출물이 조직의 최종 결과물이 되기까지 어떤 판단과 조율이 필요한지 보는 렌즈로 읽는 편이 안전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꽤 분명해 보인다. AI 도입의 책임은 도구 안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섬세한 사람의 판단으로 돌아온다.
원문 정보
- 제목: Designing with AI at Work: Designers’ Expertise and Pragmatic Decision-Making in Workplace AI Transformation
- 저자: Lu Xian, Huiran Yi, Yile Zhang, Jingyan Zeng, Zifan Zhang
- 연도/게시일: 2026
- 게재/출처: Proceedings of the 2026 ACM Conference on Fairness, Accountability, and Transparency
- DOI: 10.1145/3805689.3812239